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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 출간
  • 최원영 기자
  • 등록 2020-07-20 07: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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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중진 조병기 · 허형만 · 임병호 · 정순영 시인 4인이 세 번째 합동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를 출간했다.(문학과 사람 刊 ).

시력(詩歷) 50년이 넘는 이들 4인은 자주 만나 형제처럼 우의를 돈독하게 다짐은 물론 각자의 작품을 통해 詩와 인생의 길을 더욱 심층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특히 <인물시> 편에서 각자 작품으로 상대방을 서로 칭찬하며 격려해,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요즘 문단풍토에서 보기 드문, 순수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 주고 있다.

예컨대 조병기 시인을 두고 「학이 살포시 날개를 접듯」(시,허형만), 「고향마을 소년같은」(임병호), 「서정의 소리꾼」(정순영)으로, 허형만 시인은 「백합꽃 피던 날 아침」(조병기), 「강물처럼 세월처럼」(임병호), 「고샅길 품안에 고여드는 햇살」(정순영)이라고 노래했다.

또 임병호 시인은 「형제봉을 바라보며」(조병기), 「광교산 집 한 채」(허형만), 「서정의 옷소매로」(정순영)로 표현하고, 정순영 시인에 대하여는 「강바람 솔바람 소리」(조병기), 「큰바위얼굴」(허형만), 「서정의 빛이여, 상징이여」(임병호)라고 비유했다.

인물시편은 <포켓프레스> ‘향기나는 詩’에 연속 발표돼 독자들의 인기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근작시 20편씩 수록한 작품들도 주목된다. 임애월 시인(한국시학 편집주간)은 해설 <4인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 읽기>를 통해 4인의 작품세계를 각각 다뤘다.

먼저 <꽃의 기억법 – 조병기 시인> 편에서 “꽃은 아름다움, 사랑, 열정, 기쁨, 희망, 목표, 웃음 등의 심미적 대상으로 비유되어 문학작품 속에 수시로 등장한다. 시 「억새꽃」의 경우 ‘달 맑은’ 밤에 ‘적막한 땅 끝에 와서/ 흐느끼는 사람’으로 은유돼 억새꽃의 흔들림은 ‘살아서도 죽어있는 목숨/ 죽어서도 살아있을 영혼’의 안타까운 사연을 품은 한스러운 대상으로 환치되고 있다. ‘땅 끝’ 척박한 지구의 모퉁이까지 떠밀려와 회한과 ‘그리움’에 가슴 떠는 절박한 어느 한 생이, 고즈넉한 가을밤 억새꽃의 흔들림으로 형상화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고 밝혔다.

<생태적 상상력- 허형만 시인>에서는 “허형만 시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새, 꽃, 우듬지, 황소, 연잎, 풍란 등 그 대상이 자연물인, 생태적 상상력의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참새는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새이다. 그 작은 ‘참새 두 마리가 통통통 장난 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는 그 두 마리의 참새를 온 우주의 중심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그 ‘가녀린 발가락이 대지를 울리’고 그로 인해 ‘이파리들’이 ‘춤추’고 ‘구름’도 ‘잠시 놀아주’며 온 우주가 참새 두 마리를 위해 움직이며 정성을 쏟고 있다. 각각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상에 존재하는 꽃 한 송이, 개미 한 마리 모두가 제 삶의 주인공들이다”라고 하였다.

<술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 – 임병호 시인>에서는 “작고 외로운 대상들에게 더 따스한 눈빛을 보내는 시인의 작품 속에서는 수 많은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잘 나고 힘센 자들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묵묵하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시인은, 그들에게 더욱 힘차게 살아달라는 주문을 작품으로 형상화시킨다, 「명약 복용하기」에서 ‘마스크 풀고 단숨에 몇 잔 마셨더니/ 이 세상 고뇌가 금세 사라졌다’는 조금은 위험한 고백을 읽다가 ‘가로수 가지에 새순 돋는 연둣빛 소리/ 산수유 꽃망을 열리는 노오란 찰나/ 코로나가 사라지는 뒷모습’이 보인다는 끝부분에서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성령의 빛으로 – 정순영 시인>은 신앙을 다뤘다. “정순영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요즘에 발표하는 시편들에서는 그 행간 속에 신앙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작품이 자주 보인다. 특히 요 몇 년 사이, 부인이 말기암으로 사경을 헤메다가 기적처럼 완치된 이후부터는 조금 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신앙인에게는 종교의 힘이 대단한 위력을 갖는다. 삶의 힘든 여정을 버티어 나가는 과정에서 신이 내려주는 그 힘은 정신적인 바탕을 든든하게 해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지렛대가 된다. 「눈부신 빛 속에서」처럼 스스로 한 그루의 생명나무가 되고자 ‘사유’를 ‘뿌리’로 삼고 ‘오늘 하루도 스스로 짓는 소욕의 죄를/ 하늘의 파란 바람으로 씻는’ 의식의 과정을 날마다 거르지 않으면 ‘눈부신 빛’을 분명하게 보게 되리란 믿음을 확신케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눈이 핑핑 돌아갈만큼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디지털 시대의 가벼운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묵직한 삶을 자연스럽게 고집하는 4인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의 시편들에서는 따스하고 정감있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고 있다. 그 행간을 따라 읽다 보면 화려하게 치장한 현란함이 아닌 연필로 꼭꼭 눌러쓴 글씨 같은 순수하고 담백한 위로와 웃음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코로나19’ 이전의 특별할 것도 없던 일상생활이 그리워지는 요즈음, 이 시집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짚어 읽으면서 올 여름 장마철을 견뎌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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