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수도원처럼 하느님 모시는 집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길을 열어 주어
주민 센터에, 혈압약 지으러 지름길로 간다
검붉은 벽돌과 색 바랜 스테인드글라스, 양철지붕과 종탑 보루
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본당은 지은 지 하마 60년
번성한 은행나무, 느티나무가 성전 파수꾼이다
성당은 피난민들의 거처를 굽어보는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방 고층 아파트 숲 옴팍한 저지대로 남아 있다
가끔 이 길을 지나며 안쪽을 힐끔거리나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화단 가에 박혀 있는 다듬지 않은 돌들까지
차분한 본당의 분위기에 경배하듯 유순하다
홍해 길을 열어주신 신부님께선 아셨을까
주민들 이 길을 지나며
삶에 이어 죽음은 오리니
나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관리하는 사람 없어도
홍해를 건너 주민 센터에, 학교에, 시장에 간다
잠시 부산스런 마음 부려 놓으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 모두 제자리에 있다
[임채우(林采宇) 시인 약력]
2011년 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로 등단.
시집 『오이도』 『토끼의 뽀얀 연분홍 발뒤꿈치』 『소아과에서 차례 기다리기』 『설문』이 있으며, 산문집 『시가 말을 걸었다』와 비평집 『촉도난』 등이 있음.
現 (사)우리詩진흥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