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탱화이거나
돌버섯 낀 석탑이든
약속을 지키는 도반은
일시무종일(一始無終一)이고
옛님이 숨겨놨던 눈웃음을
구석진 가슴속에서
되살려 내었어도
이제는 말라가는 개울물과
노을 따라 저무는 희억일 뿐
이따금 흥얼거리는
세마치 가락조차
한 박자 쉼표가
차지해버렸으니
아 때늦은 샛바람
비웃음만 띄우고
느린 발걸음마저 가볍잖구나.
[여해룡 시인 약력]
"국제신보" 1962년 "들녘에 핀 노래" 시로 등단. 동래고, 부산대, 연세대 대학원 졸업. 한국문협, 국제펜클럽, 음악저작권협회 회원. 서울장신대교수 지냄. 한국우취연합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