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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던 날 -시인 이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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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10-20 05: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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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 많은 식구가 모여 십 칠 년을 살았다

남의 손에 넘어간 집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이사를 감행했다

매서운 한파 몰려오던 그해 겨울 종갓집 살림살이

아무리 버리고 버려도 줄어들지 않았다

애지중지 아끼던 장롱과 아이들이 쓰던 책상과 의자

재활용 창고에 내다 버리고

설움에 북받쳐 울던 하늘 하염없이 찬비가 내렸다

사랑에 목말랐던 작은 여우*달빛 뜨락에 잠이 들고

묵묵히 거실을 지키던 피아노 헐값으로 팔아넘길 때

텅 빈 가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푸른 향기 토해내던 싱싱한 화초들 시들어 가고

동백나무 한 그루 살아남아 이삿짐에 실렸다

대가족이 모여 단란한 삶을 누렸던 정든 집을 떠나

천호대교 건널 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얼어붙은 강물 위에 눈발이 휘날렸다

흥남 부두에 몰아치던 눈보라가 저토록 차고 매서웠을까

참았던 눈물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찬 바람에 낙엽 지듯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 집에서 기르던 애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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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강 시인 약력]

2008, <문예비젼>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기시인협회 회원. <셋>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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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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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sedo2020-10-24 09:06:58

    맑고 고즈넉한  눈길로  소용돌이 에 찬  생의 한 시절을 돌아보게  합니다 .징검 걸음으로  건너 갸던~~
    하마,  붉은  동백꽃  피는가. 어는 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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