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들이 한꺼번에 걸어온다
지하 계단을 걸어
올라와 현관 앞 정원에 우뚝 선다.
손가락이라고 쓴
허공을 풍선처럼 불어
감나무 위에서 터트린다
와르르 손가락을 뒤집어쓴 감들은
하늘 위로 떨어진다 빠르게
떨어지다가 돌연,
정지한 채 공중에 떠 있다
감들은 어째서 중력의 법칙을
배반하고 저렇게 떠있는가
얼굴도 없는 중력이 경악한다
남겨진 내 손가락들이
감나무 안에서 서성일 때마다
감나무의 출입문이 닫혔다 열린다
문득,
열 개의 손가락이 나를 끌고
처음의 거실로 돌아온다
감나무는 붙어 있는 가지와
다시 붙으려는 감들의 고요한
아우성이 뒤섞인다
바깥에서, 감나무의 바깥에서
감나무를 다시 바라본다
우거진 가을 한가운데
감나무가 감나무의 이름으로 서 있다
별로 눈부실 것도 없는데 눈부셔서,
나는 소스라친다
거실에서 홈 시시 티브이
모니터로 죽은 까마귀 날아오르는
소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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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식 시인 약력>
2003년 『시문학』 신인상 등단. 문학박사.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외 다수. 제1회 중앙대문학상 청룡상 수상. 시 「북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각각 수록.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시 창작’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