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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 -시인 박 잎
  • 시인 박 잎
  • 등록 2019-11-12 06:02:17
  • 수정 2019-11-12 0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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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에서 무엇을 만났던가.

물곰을 만났어.
수족관 속에서 그건 거대한 몸을 비틀고 있었지.
일자의 넓은 아가리.
유리에 맞닿은 희멀건 살은 살구꽃빛 닮았더라.
또 주홍망 속에 들어있는 문어를 만났지.
여덟 다리의 둔한 꿈틀임.
난 문어에게 휘감긴 무력한 몸을 상상했어.

흐린 오후, 항은 한산했어.
점점이 오징어잡이 배들 떠 있고...
수산물 시장으로 성큼 들어갔어.
외래어처럼 낯선 물고기들.
싱싱한 것들을 보기 위하여.

어떤 놈은 수족관 속에 죽은 듯 잠겨있고,
어떤 놈은 빨간 대야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지.
아기주먹만한 골뱅이가 유리벽에 꼼짝없이 붙어있더군.
나는 양식전복을 조개냐고 물어 아저씨께 지청구를 들었어.
정신없이 보다, 난 물었지.

저 새카맣고 통통한 몸에 죽은 듯 잠겨있는 건 뭐냐고.
‘복어!’ 짧게 돌아온 대답.
복어의 몸은 징그러울만큼 새까맸어.
그거랑 비슷한데 줄무늬에 노란 지느러미를 팔랑이고 있는 저건?
‘까치복.’ 역시 명쾌한 대꾸.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는 놈이 있었으니.
붉은 몸에 흡사 나비날개마냥 지느러미를 팔랑이는.
검푸른 바탕에 초록점이 박혀있는 지느러미.
그것의 이름은 성대라 했지.
울긋불긋한 홍치, 버섯같은 가리비.
 
가리비 위의 새똥무늬는 고대의 상형문자를 떠올렸어.
아, 잡혀온 것들의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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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잎 시인 약력] 
2017년 <월간 시see>신인상 등단. 시집 <꿈, 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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