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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확대’, 얼마나 졸속이면 전교조 교사들도 발끈할까?
  • 최원영 기자
  • 등록 2019-11-07 08:31:01
  • 수정 2020-09-11 15: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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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율이 높은 13개 대학 실태조사는 한마디로 별거 없었다. 대학들이 학종을 이용해 일부러 과학고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출신 학생들을 많이 뽑았는지 실태 조사를 벌였지만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한 채 이미 상식에 속하는 특목고 학생들의 합격 비율이 높은 팩트확인에 그친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특목고에 몰려 있으니 상위권 대학에 많이 합격하는 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이 조사를 근거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을 발표할 태세다. 즉 특목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동시에 수능위주의 정시를 확대한다는 문 대통령의 최근 발표를 실행에 옮길 태세다.
 항간에서는 이 실태결과를 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부정 의혹을 현행 학종 등 입시제도 탓으로 돌리려는 수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중심으로 정시확대를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나섰다는 점이다. 전교조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교사 1794명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불평등 해소와 입시 만능 경쟁교육 철폐를 위한 고등학교 교사 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 고교 교사들은 "문재인 정부는 대학 서열화와 고교서열화 해소를 통해 불평등교육과 교육격차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에도 도리어 수능 정시확대를 주장하고 있다"며 "수능 정시확대가 의미하는 바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퇴행하는 동시에 교실붕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반교육적이며 공교육 포기선언"이라고 비판했다.
 교사들은 "오늘 현실이 미래 교육의 씨앗을 모조리 불살라버리는 우매한 결정이기에 두 손을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면서 "교육은 국가 100년을 설계하는 중차대한 영역이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에도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정시확대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반발에 부닥치자 모든 대학에 정시를 확대하는 것은 아니라며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했다. 청와대와 교육부 간에도 이를 놓고 엇박자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보면 정부의 정시확대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을 고민하기 보다는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쪽에 가까운 전교조 교사들이 쌍지팡이를 들고 나왔을까.
 정시위주 대학입시는 2000년대 초 강남 대치동을 시발점으로 목동과 중계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 오면서 수시강화로 이어졌다. 교사들이 이날 역사의 수례바뀌를 돌리려는 반교육적 선언이라고 정시확대를 반대한 것도 2000년대 초부터 굳어진 강남불패 신화의 처절한 부작용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정시확대를 밀어붙이는 발표를 한 이후 강남과 목동 일대 학원들은 표정관리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동안 대입학원 포화상태로 허덕이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학원 강사들도 다시 대입학원으로 유턴할 기미도 보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 지역 부동산 전세 물량은 벌써부터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날 오후 어린이책시민연대와 전국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 참교육학부모회, 평등교육학부모회 등 진보성향 학부모 단체들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정시 확대 취소를 요구했다.
 이들 학부모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통령의 정시확대 발언으로 학부모는 혼란스럽고 벌써부터 강남집값이 들썩인다는 보도가 나온다. 학원을 더 보내야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나날"이라며 "이것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 아이들을 다시 더 깊은 경쟁으로 내몰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시확대 방침에 따른 일대 혼란 상황은 오히려 미국식 수능인 SAT를 폐지하고 대학별 고사를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씁쓸하고 창피하기 까지 하다.
 결국 이번 사태는 특정인의 입시 비리 의혹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만큼 당장 철회하고 나라의 장래가 달린 미래세대의 행복을 위해 진정한 교육 플랜을 다시 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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