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접혀진 자국이 경계 같이 선명하다
한 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 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 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를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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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상진 시인 약력 ]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전태일문학상>수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복숭아문학상 대상, 경주문학상 수상.
문학동인 Volume 회원.
시집 『눈물 이후』(시산맥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