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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역에서 -시인 김용옥
  • 시인 김용옥
  • 등록 2019-10-04 05:11:25
  • 수정 2019-10-23 07: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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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열차 그 기다림의 시간
어둠에 묻힌 작은 시골역 대합실
외줄기 홈에는 하얀 눈이 쌓이는데
어떤 이는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고
어떤 이는 낡은 신문지를 뒤적이고
나는 낯선 외지의 풍경을
하나하나 서리낀 유리창에 새겨 보고
모두들 아무 말도 내놓지 않아도
쌓이는 눈꽃에
서로의 안부
오늘의 사연들을
애틋한 예날이야기처럼 피워내고 있다.
창밖에는 간간이 바람이 불고
여전히 하얀 눈이 쌓이고
우리 모두는 다음 열차
그 기다림의 시간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들
희미한 전열구 밑에
삶의 한순간
기다림의 의미를 짓고 있는 사람들
졸고 있는 사람도
저렇게 쿨룩이는 사람도
시장기에 지친 사람도
기적이 울리면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길로
그래서 지금의 시간을 버려야 한다.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모두들 다음 열차
그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싸록싸록 눈꽃은 쌓이고
나는 다음 열차 그 기다림의 시간을
그리웠던 순간들처럼
조심스럽게
가슴에 찍어 담고 있다.

*춘양역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선 산간지방에 있는 조그만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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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시인 약력]
1987년도 『시와 의식』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으로 〈춘양역에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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