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 없는 시골 마을
고장 난 시계처럼 조용해
노랑노랑 하품이 쏟아진다
한뎃잠 들었다가
들판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맹물같이 맑은 하늘 아래로
누가 등을 떠밀었는지
곡식도 참 잘 익었다
다문다문 지붕들은 유배지처럼 적적해
늙으려면 한참 멀었다는 노인
대여섯 땅에 엎드려
심심하니 황금을 줍는다
삼백 살 넘었다는 은행나무 그늘이 맑아
아흔 해째 교회마당 예수까지 다 품어 안았다
속속들이 따뜻해오는 가을볕에는
꺼내 놓을 죄가 없어
은행 한 됫박 사고
인심 반 됫박 덤으로 건너오니
영주 부석사 보살행 접고
빈집 찾아 들어가 딱 한철만 혼자 살아볼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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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자 시인 약력]
서울출생. 2005년 <시와 정신> 등단,
<시와 정신> 편집차장
시집 『술병들의 묘지』『그 밖은 참, 심심한 봄날이라』
2018 백신애 창작기금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