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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출세에 대한 단상
  • 김상민 자문위원
  • 등록 2019-09-27 11:48:34
  • 수정 2019-10-23 10: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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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역에서 권력자에게 '항룡유회' 강조 - 인생에서 물러남의 지혜가 중요 이사는 권력을 계속 탐하다가 참살당했고, 장량은 적절할 때 물러나 보신 권력은 등산과 같아서 오를 때보다 내려올 …

 

동양문화에서 인재는 용(龍)에 비유된다. 인간의 경륜과 지혜가 담겨있다는 동양 인문학의 최고봉 <주역>에는 64괘가 있고 첫 괘는 건괘(乾卦)인데, 여기에 다양한 용(龍)이 나온다. 여기서 건(乾)은 천지창조부터 세상의 끝까지, 생명의 잉태부터 죽음까지 모든 시간을 의미한다. 사람은 ‘시간의 절대성’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므로 ‘때와 기다림’을 잘 알고 살아가라는 게 건괘가 설명하는 내용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얘기되는 잠룡(潛龍)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인재를 말한다. 때와 장소를 잘못 고르면 일을 그르치게 되므로 너무 일찍 뜻을 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마디로 청년 출세는 반길 일이 아니라는 것.

인재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현룡(見龍), 물위에서 뛰노는 약룡(躍龍),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룡(飛龍)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이 하늘까지 올라간 항룡(亢龍)이다. 항룡이 되면 내려갈 일만 남았다. 물러날 때를 거부하고 쓰임새가 다했는데도 자리에 연연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니 이를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표현했다. 공자는 "항룡은 존귀하나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항룡이 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물러남의 지혜’이다. 물러남을 언급한 대목의 <주역>의 둔괘(遯卦)이다. 호둔(好遯)은 때를 잘 맞춰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 가둔(嘉遯)은 칭찬을 받으며 물러나는 것, 비둔(肥遯)은 준비를 한 후에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둔미(遯尾)는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갑자기 물러나는 것, 최악인 계둔(係遯)은 사건에 휘말려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 준비 없이 물러날 때 혹은 사건에 휘말려 물러날 때 그 충격으로 앓거나 인생 자체가 망가진 경우도 많다.

동양 역사에서 항룡의 대표적인 비극 사례로 진나라의 이사(李斯)가 있다. 그는 시황제를 도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뤘으나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해 나중에 자신은 물론 일족이 몰살당하는 참상을 겪었다. 반면, 유방을 도와 통일을 이룬 한나라의 장량(張良)은 권력의 잔인한 속성을 깨닫고 시골에 은둔하는 삶을 선택해 천수를 누렸다.

권력과 출세를 의미하는 항룡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는 일상사로 등산을 꼽을 수 있다. 등산에서 사고는 오르는 과정이 아니라 내려오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난다. 존 크라카우어가 쓴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그 과정을 절절히 보여준다. 1995년 5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복에 나선 18명의 등반대는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갔다. 하지만 엷은 구름이 정상을 덮으면서 그들의 하산 과정은 삶과 죽음의 드라마가 되었고, 결국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등산 과정에서 초보가 큰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높은 산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름 등산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기억될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해 높은 곳을 오르다가 ‘차가워진 날씨와 희박해진 공기’ 탓에 위험에 부딪힌다. 정상 정복을 하겠다는 무모함이 적절한 열정을 초월하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다. 1921년부터 존 크라카우어 일행이 참사를 겪은 1996년 5월 사이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630명이 밟았다고 한다. 그중 144명이 하산 도중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간 정신은 개인을 발전시키고 인류를 도약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렇지만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은 도전 과정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특히 권력의 세계를 보면 세상의 순리나 인간의 도리를 무시한 채 착각과 오만에 빠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인생 막판에 위선자나 파렴치한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위선자(hypocrite)는 본래 무대 위 배우를 가리키는 데, 사람들이 가면을 오래 쓰면 결국 그게 자신의 얼굴이 되어 인생사의 본질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라고 한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는 “가면은 오랫동안 피부에 달라붙고, 위선은 결국 진심이 돼 버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권력의 속성에 대해 다양한 현인들이 수많은 진단을 내놨다. 권력은 흔히 정치권과 국가기관에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권력현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실이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학교, 심지어 동호회에도 권력은 존재한다. 데이비드 이스턴은 ‘권력을 권위를 통한 가치 배분 능력’으로 정의해 학자적인 시각에서 그 기능에 주목했다. 칼 슈미트는 권력을 두고 일어나는 싸움에 주목해 ‘적과 동지를 구분해서 쟁취해야 할 목적’으로 인식했다. 액튼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면서 권력의 악마적 성격을 경계했다.

권력은 여러 사물 가운데 칼, 모래, 양파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권력은 칼로서 상대방을 베고 찌를 수 있지만, 사실 가만히 보면 손잡이가 없는 칼로서 자칫 과도하게 사용하면 자신도 다치게 된다. 억압과 강제, 폭력의 권력이 반드시 비참한 종말을 맞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권력은 모래로서 기반 자체가 쉽게 허물어지고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다. 모래를 손으로 쥐려면 너무 세거나 너무 약해서도 안 된다. 권력은 적절히 쥐어야한다는 의미다. 권력의 본질은 양파와 같아서 까고 또 까다보면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권력은 불과 같아서 너무 가까이 가면 타서 죽고, 너무 멀리하면 얼어 죽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권력을 열망하고 권력을 누리기 위해 출세를 지향한다. 권력과 출세, 오늘도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정말 피곤하고 힘들게 하는 나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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