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여자일까 방관자일까..광복절을 맞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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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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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천하에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며 천시할 사람은 방관자'
조선불교유신론에서 6가지 방관자 지목 - 혼돈파 위아파 오호파 소매파 포기파 대시파
정치 안보의 불안 속에 '제대로 하라'며 비판만 많아져 ,,, 참여하지 않으면 발언권도 없는데

19세기 말 조선이 망해갈 때 중국도 비슷한 처지였다. 나라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지식인들은 실천보다는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 계몽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는 자신의 문집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에서 방관하는 지식계급을 여섯 부류로 구분해서 "방관자를 꾸짖노라!"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조선에도 전해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8년 대성학원 교장 시절에 삼남지방의 젊은 선비 세 사람이 찾아와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물었을 때, 도산선생은 “양계초가 지은 `음빙실문집`을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승려이자 시인이었고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은 <조선불교유신론>이라는 책에서 량치차오(梁啓超)의 글을 인용해 방관자를 꾸짖고 있다. 한용운 선생은 ‘천하에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며 천시할 사람은 방관자보다 더한 것이 없다. 방관자는 항상 객관적인 위치에 서서 무슨 일을 대하든지 소매에 손을 넣은 채 바라보는 자를 가리키는데, 실로 인류의 도둑이며 세계의 원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방관자에는 크게 여섯 종류가 있다고 하는 데 다음은 한용운 선생의 말씀 요지.

첫째, 혼돈파(混沌派). 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깜깜하게 알지 못하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생사와 흥망을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는다. 비유하면 물에서 놀던 고기가 잡혀 끓는 솥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따뜻한 물을 봄의 강물로 오해하고, 제비가 반쯤 불붙은 집에 있으면서 오히려 해가 떠서 집을 비춘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방관자는 스스로 알지 못해 방관자가 되었으며, 실로 방관자 중의 천민(天民)이라 할만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배운 무식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위아파(爲我波). 속담에 벼락이 쳐도 편히 앉아 짐을 싼다고 하는 자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해도 내게 이로울 게 없고 하지 않아도 손해될 게 없는데 고생과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유하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데도 무관하다고 말하고, 토끼가 여우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과 같다. 분수를 지키고 몸을 조심하는 자와 수전노는 모두 이 파에 속한다. 옳고 그름보다 단기적인 손익계산에 밝고 나라가 망해도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다.

셋째, 오호파(嗚呼波). 저들은 탄식하면서 한숨짓고, 통곡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유일무이한 사업으로 삼는 자들이다. 그 얼굴에는 항상 일을 근심하는 기색이 엿보이고, 입으로는 시대를 슬퍼하는 말이 적지 않으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자고 하면 저들은 ‘참으로 마땅하지만 할 길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시대의 위기를 말하면 저들은 ’참으로 위태롭지만 구할 길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저들은 매사를 시운(時運)이며 천심(天心)이라고 할뿐 팔짱을 끼고 속수무책으로 있다. 마치 불이 난 것을 보고 끄지 않고 불길의 치열함으로 탄식하는 것과 같고, 남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구하려 하지 않고 파도의 사나움을 통탄하는 것과 같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시와 담론의 자료로 삼지만 일에 착수하지 않는다. 마음이 있으면서 무지하고, 지혜가 있으면서 용기 없는 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즉 실천하고 추진할 용기가 부족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넷째, 소매파(笑罵波). 항상 남의 배후에서 비웃는 말과 격렬한 욕설로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자들이다. 저들은 스스로 방관자의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을 핍박해서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노인을 대하면 노망기가 깊은 것을 매도하고, 청년을 대하면 경솔히 일을 저지르는 것을 매도한다. 일이 성공하면 ‘그 녀석이 이름을 이루었네.’하고, 일이 실패하면 ‘나는 이미 이렇게 될 줄 알았지’해서 편한 날이 없다. 장차 이루어질 것 같은 일은 반드시 비웃으며 매도해 저지하고, 이미 이루어진 일은 반드시 비웃으며 매도해 깨뜨린다. 저들은 세계에서 가장 음흉한 자들이다. 저들은 비웃고 욕하는 것 외에 본래 아무 계책이 없다. 비판을 위한 비판과 놀부 심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포기파(抛棄波). 이 파는 자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 언제나 남에게 기대하고, 자기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자들이다. 정치는 부유층에 기대하고, 도는 성인에게 기대하고, 성공은 영웅에게 기대하는 부류다. 서로 전가하고 없어지게 해서 마침내 하나도 전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자들이다. 스스로 나서지 못하는 즉 주체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여섯째, 대시파(待時波). 이 파는 실제로 방관하면서도 스스로 방관자의 이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때라도 일을 할 만한 시기이며, 일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때라도 일을 하지 않는 시기가 된다. 뜻이 있는 사람은 기다리지 않고 대세를 만들어간다. 때를 기다린다는 사람은 세상 형편이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가 곁에서 남은 이익을 얻으려고 해서 대세가 동쪽으로 향하면 자기도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향하면 자기도 서쪽으로 가는 자다. 이는 위선자의 본색이며, 방관자 가운데 가장 교묘한 자들이다. 간교한 먹물들이라고 하겠다.

한용운 선생의 표현을 빌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관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국민이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국방과 납세’다. ‘누구나 하기 싫어하지만, 누군가는 꼭 실천해야 하는 게 바로 국방의무와 납세의무다. 그런 만큼, 군복무도 하지 않은 사람이 안보를 얘기하고, 제대로 월급을 받아보지도 않고 제대로 사업도 안 해 본 비정상적인 정치인들이 ‘경제 살리기와 성실 납세’를 얘기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럴듯한 말만 앞세운 조직원(회사원)이 많아지면 해당 조직(기업)은 망하고, 그럴듯한 말과 자신의 권리만 앞세운 국민들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방관자야말로 ‘사실상 매국노와 비슷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즘 안보와 경제가 심히 어려워지면서 나라의 미래에 대해 걱정과 한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SNS에 정부 비판의 댓글이 넘쳐나고 사람들의 만남에서 ‘분노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들은 정치권을 향해 ‘너희가 좀 제대로 해라. 뭐하는 거냐’라고 호통하면서 정작 자신은 나서지 않고 뒷짐을 진다. 이러한 방관자들이 많았던 시절이 19세기 구한말이었고, 그 결과 엄혹한 일제강점기를 겪어야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봤으면 회초리와 몽둥이로 혼쭐을 내줬을 사람들이다.

세상의 엄연한 진실은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 남 탓만 하고 남에게 삿대질만 하는 얼치기 방관자들은 발언권도 없어야 한다. 헛소리만 난무하고 세금만 탐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는 내리막길을 탈 수밖에 없다.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국민, 일을 열심히 하는 국민이 많아질 때 ‘부국강병’이 이뤄진다. 그래야 다른 나라에 지지 않는다. 내일은 광복절이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100개의 편지>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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