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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존엄(dignity)을 지켜주는 성숙된 언어를
  • 김상민 자문위원
  • 등록 2019-08-12 15:32:33
  • 수정 2019-10-23 10: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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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은 타고난 그리고 양도불가능한 가치로 사람은 누구나 '존엄의 대상' SNS에 널리 퍼져있는 험담과 비방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엄도 해친다 '품위잃은 언어를 쓰는 인물들'은 멀리해…

구글의 사훈은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다.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구글이 여기저기 사업을 확장하면서 착한 행동으로 일관하지는 않은 탓에 사훈의 의미는 크게 퇴색했다. 그렇다고 해도 ’목표 지향‘이 아니라 ’가치 지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 10대 기업, 100대 기업‘ 등 목표를 내세우는 기업보다 한층 멋있고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넬슨 만델라는 인권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로벤섬에 있는 교도소에서 27년 동안 수감됐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Long walk to Freedom>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교도소와 정부 당국이 결탁해서 모든 수감자들의 존엄을 박탈하려고 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분명 이 곳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압박을 받든 나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게서 존엄을 빼앗아가려는 어떤 개인이나 정부 당국도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넬슨 만델라가 얘기한 존엄(dignity)이란 무엇일까. 존엄은 존경(respect)과 다르다. 존경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뭔가 특별한 행위를 한 경우, 혹은 보통 사람의 찬사를 받고 귀감이 될 만한 노력의 결과로 생겨난다. ‘인간의 품격 혹은 품위’라고도 볼 수 있는 존엄은 이와 달리 ‘인간의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그리고 양도 불가능한 가치’이다. 사랑스러운 아기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존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타인의 존엄을 다양한 방식으로 침해한다. 타인이 나쁜 행동으로 나에게 해를 끼칠 때 앙갚음을 하거나,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존엄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이 무고한 희생자인척 하는 것도 존엄을 지키지 못하는 행동이다. SNS를 통해 험담을 하고 모욕을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거의 매일 접하는 ‘존엄 침해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처럼 ‘험담과 같은 존엄을 해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일까.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 자신의 평판을 지키려는 동기가 더 강하다. 사람들은 훌륭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훌륭해 보이는 데 더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의 일환으로 타인의 존엄을 거리낌 없이 침해한다는 의미다. 특히 타인에게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피해를 입히면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험담과 뒷담화라는 방식을 쓴다. 험담과 뒷담화는 광범위하게 효과를 미치면서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는 왜 험담에 끌릴까. 자기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것보다 타인의 실수를 찾아내서 꼬리표를 붙이는 편이 훨씬 더 쉽고 즐겁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지인은 최근 SNS에서 넘쳐나는 비방이나 험담과 관련해 “편견과 선입견이 너무 심해졌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사실 왜곡이나 비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거칠고 험하게 비난한다. 이는 다양한 의견을 기초로 만들어지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파괴하는 행위다”고 지적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편 가르기’하는 사람들이 망각하는 게 ‘타인은 우리 앞에 놓인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타인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게 되는데, 타인을 배척하는 것은 자신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을 깨뜨리는 행위다. 거울이 없다면 자신에게 묻은 오물과 더러운 얼굴을 찾아낼 수 있을까. 윈스턴 처칠은 이와 관련 “수긍하기 힘들더라도 비판은 필요하다. 비판은 인간이 몸으로 느끼는 통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건강하지 못한 부분에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타인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첫 걸음이다. 그런 측면에서 험담이나 국민 분열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은 물론, 타인의 존엄과 국가 사회의 존엄을 해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가치 지향형’이 아니라 ‘목표 지향형’인 경우가 많다.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이들의 ‘나쁜 말, 거짓된 말, 타락된 말’에 현혹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젊은 대학생들은 이런 분들을 ‘최악의 동문’으로 꼽으며 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인의 존엄을 지켜줄 때 내 자신의 존엄도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늘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댓글과 험담으로 타인의 존엄을 해치면서 무고한 피해자인척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도 모르게 속된 단어를 써 가면서 저 사람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상대방의 관점을 완전히 이해하고 반응하고 있는 걸까?”

인간의 언어는 그 사람의 품격 즉 존엄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대화나 비판을 하더라도 자제력을 갖추고 가치지향적인 사고를 통해 품위를 지녀야하지 않을까. 다음은 널리 알려진 동서양의 에피소드 세 가지.

#1.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오늘 무학대사를 보니 꼭 돼지 같아 보입니다”라고 무안을 줬다. 대신들이 껄껄 웃자 무학대사는 태연한 척 하며 이성계에게 “전하께서는 꼭 부처님처럼 보입니다”고 답했다. 이성계가 이유를 궁금해 하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기 때문이지요.”라고 설명했다. 태조 이성계도 껄껄 웃을 수밖에.

#2.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유세를 하는 데 상대방으로부터 “두 얼굴의 인물”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링컨은 유세장에서 “저한테 얼굴이 하나 더 있다면, 이 얼굴(못생긴 얼굴)을 하고 다니겠습니까?”라고 청중들에게 호소했다.

#3. 한 독설가가 “정치인의 절반은 거짓말쟁이다”고 공격했다가 신문에 사과문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독설가는 사과문에 “정치인의 절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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