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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치매와 포퓰리즘을 부른다
  • 김상민 자문위원
  • 등록 2019-08-11 16:33:56
  • 수정 2019-10-23 10: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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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마트폰 중독중이 뇌 구조를 '단기 기억 위주'로 바꾼다 디지털문화의 동료의식이 '편가르기'를 불러 일으키면서 '다른 의견'을 배척 사람의 두뇌가 스마트폰에 장악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

하루 150차례 이상 들여다본다. 이메일의 70%는 도착한지 6초 이내에 열어서 확인한다. 사용시간은 하루 3시간씩 매달 100시간 정도. 전 세계에서 연간 팔리는 숫자는 18억대(2018년). 출근할 때, 식사할 때, 화장실에 갈 때, 친구를 만날 때, 그리고 잠잘 때도 늘 곁에 머무는 진정한 동반자. 스마트폰의 위상이다.

똑똑한(smart) 전화기라는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대인을 비합리적인 단순주의자와 디지털 중독자로 만드는 발명품’이 바로 스마트폰 즉 휴대폰이다. ‘생각 없는 두뇌’를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고 그 후유증은 무엇일까.

인간의 진면목은 ‘학습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사람의 경험은 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학습이 이뤄질수록 난이도(어려움의 수준)를 높여야 한다. 새로운 난관을 넘어설 때마다 재미를 느끼고, 그러한 지적 변화를 통해 성장한다.

인간의 학습은 문자의 발명 이후 오랜 시간동안 책이나 신문을 통해 이뤄져왔다. 책과 신문의 글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연속적으로 그리고 차례차례(연속성과 순차성)’ 배열되므로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지식을 건물을 만들어 가듯이 하나하나 쌓아나간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거기에 담긴 뉘앙스 즉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기 위해 고민과 사색을 한다. 그러한 ‘머릿속 건축’ 과정에서 지력(智力)이 쌓인다.

스마트폰의 스크린에서 읽히는 글은 여기저기 산만하게 놓여 있다. 흥미 위주의 부각되어 있고, 정작 삶에서 지혜 측면에서 중요한 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스마트폰의 글 배열에 저항하는 것도 쉽지 않다. 스마트폰의 이용도를 높이려는 ‘똑똑한 마케팅과 컴퓨터 전문가들’이 사용자들의 자제력을 허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글을 읽으면 뇌 회로가 ‘디지털 기반의 읽기 방식’으로 바뀌고, 이때 ‘연속적이고 순차적인 사고의 틀’이 약해진다. 스마트폰을 끄고 책이나 신문을 읽더라도 뇌에서는 ‘디지털 읽기방식’이 계속 작동한다. 그 결과 책과 신문을 오래 읽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 바로 스마트폰의 기사와 메일 점검에 들어간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당연히 기억력이 떨어진다. 조지 밀러라는 심리학자는 예전에 숫자 7을 ‘마법의 숫자’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듣고 기억하는 숫자는 ‘7±2’라는 제한 용량이 있어 그 이상의 숫자는 듣고도 기억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전화번호가 대체로 ‘일곱 자리(스마트폰 번호 010-XXX-XXXX’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듯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억하는 숫자가 확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는 사람들이 실수 없이 기억하는 숫자는 ‘4±1’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2008년 영국에서 한 보고서가 나왔는데, 성인들의 ‘평균 주의지속(집중) 시간’이 5분이라는 결과가 담겨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휴대폰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1998년경에는 성인들의 평균 주의지속 기간이 약 10분이었다는 것. 10년 새 참을성이 절반으로 줄었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인간의 기억 기능이 흩어지고 산만해졌다. 과거와 같은 ‘오래가고 집중력 있는 기억 기능’이 쇠퇴해졌다는 의미다. 그러다보니 긴 글을 읽지 않고 단순히 몇 단어만 가지고 현안을 파악한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망각의 도구’라고 불렀다.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기억력을 예전만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려했다. 스마트폰은 그런 측면에서 문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단한 망각의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억을 하지 못하다 보니 ‘현대인들은 검색만 하지 사색은 할지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 환경에서 뇌가 장기 기억보다 단기 기억의주로 재편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우려스럽게도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우선하는 성격’으로 바뀌고, 복합사고보다는 단순사고를 하게 된다.

예컨대 디지털환경에서 ‘좋아요’는 마약 같은 기능을 한다. 자신이 올린 기사나 댓글에 어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면, 그들과 동료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더 잘 어울리게 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게 심해지면 ‘다른 의견은 곧 틀린 의견’이 되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호감을 넘어 적대세력’으로 분류한다. (민주주의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인데, 자신도 모르게 비민주주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표와 지지도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틈새를 놓칠 리가 없다. 그들은 얼른 ‘나는 당신편이예요’라고 신호를 보내고 친구로서 행세한다. 그렇게 일단 ‘우리 편’이 되면 그들이 말하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허구와 진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가려내려면 시간과 정보 이해력,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산만하기 이를 데 없고 ‘단기 기억방식으로 무장된 뇌’는 정보를 판별하는 데 오랜 시간을 쏟지도 않고 아예 그럴 시도조차도 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의 현안에 대한 사실 확인은 하지 않은 채 ‘퍼 나르기 대장’이 되어 무엇이든 ‘디지털 문화에서 친한 우리 편’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엉터리 바보 뉴스는 스마트폰을 통해 순식간에 널리 퍼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게 바로 대중의 인기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열매를 얻으려면 먼저 땀을 흘리고 씨앗을 뿌려야 하며, 가정이나 국가나 오늘 돈을 펑펑 쓰면 내일 쫄쫄 굶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장밋빛 환상’에 취한 사람들은 ‘내일은 모르겠다. 미래의 불행은 지금 생각할 바 아니다’고 여긴다. 당연히 가정이나 국가나 불행에 빠진다.

최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컴퓨터가 사람처럼 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진짜 걱정해야 할 부분은 ‘사람들이 컴퓨터처럼 될수 있다’라는 점이다. 예컨대 사람의 읽기 회로는 오랜 인류의 지적 발전의 산물이자 창의력의 원천인데, 이게 스마트폰에 의해 장악당하는 게 더 우려스럽다는 얘기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기억력이 쇠퇴하는 치매가 나타나고, 정치와 사회에서는 포퓰리즘이 창궐하는 세상이 된다는 것. 디지털 환경이 가져올 진짜 무서운 세상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13세까지 자기 딸에게 페이스북을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했고, 고 스티브 잡스도 자녀들로 하여금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을 금지시켰다)

글을 마치려다 보니 한 가지 깜박했다. 요즘 스마트폰 세대는 ‘문장이 길면 안 읽는다’는 사실을. 그나저나 글을 쓰면서 한참동안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았는데 참 궁금하다. 나도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노모포비아(모바일 결핍 공포증)’에 ‘디지털 마약 중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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